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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1기생 유감'에 대한 변(辯) 외
- 김* 영
- 조회 : 4699
- 등록일 : 2018-06-03
세저리 주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1기생 김선영이라고 합니다.
지난달 25일 저널리즘스쿨 10주년 기념 동문회에 참석한 분들과는 인사를 나눴는데, 그날 뵙지 못한 분들께는 처음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여기에 오랜만에 글을 쓰니, 2008년 세저리 1기 대표로 우여곡절 끝에 이 홈피를 만들고 글과 사진을 올렸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각설하고, 제가 오랜만에 세저리 홈피에 글을 쓰게 된 건 봉샘께서 쓰신 '1기생 유감'을 봤기 때문입니다.
<문화공간 온이 꽉 찰 정도로 꽤 많이 왔지만 좀 더 많은 동문이 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특히 스쿨 창립 10주년인데 창립 멤버인 1기생의 참석이 저조해, 아무리 명절이 북적대도 맏이가 오지 않은 것 같은 썰렁함, 솔직히 말하면 배신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창립 후 1년간 재직한 남재일 경북대 교수한테는 1기생들 많이 만날 기회라며 초청했는데 못내 섭섭한 눈치였습니다. 10년 전 그는 "학생들한테 너무 정 주시면 상처받는다"고 시크한 척했는데 그도 나이 드니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책상 유리판 밑 졸업생 명단에서 참석자를 체크하면서 참석하지 않은 이들에겐 무슨 바쁜 일이 있겠거니... 나타나기엔 자신의 위치가 자랑스럽지 못해서? 거리가 멀어서? 나름대로 핑계를 만들어 섭섭함을 달래면서도 한번도 나타나지 않은 졸업생에 이르면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느끼게 됩니다. 가르치는 일에 회의감이 들고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언론인에겐 네트워킹이 자산인데...>
'봉발대발'을 가장 먼저 겪었던 1기생으로서, 봉샘의 저 글귀를 본 순간 마치 10년 전 강의실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봉샘의 섭섭함과 아쉬움,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까지 고스란히 전해지더라고요. 이번 행사에서 '봉발대발 유발자'를 뽑는 코너가 있었는데, 봉샘의 글을 보니 저희 1기가 '대표 유발자'였지 싶었습니다.
일단 봉샘의 오해와 배신감이 커지기 전에 사실관계부터 하나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사실 이번 총동문회는 최초 3월말쯤으로 잡혔다가 4월, 그리고 5월로 일정조정이 있었습니다. 저널리즘연구소 주최 세미나와 함께 동문회를 열다 보니 가장 많은 인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모일 수 있는 날을 찾았던 거죠. 그런데 저희 동기들은 3월, 4월에는 참석할 수 있다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5월달에는 희안하게도 다들 일이 생겨 모두 불참하게 됐습니다.
봉샘께서는 '미리 정해진 날짜인데, 일정 조정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성의가 부족한 것이다'라고 충분히 섭섭해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명절 때도 부득이하게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듯, 봉샘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동기들 중에는 총동문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크게 아쉬워하고 다음 동문회 때는 꼭 참석하겠다고 말한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아마 내년 동문회 때는 분명 1기의 출석률이 몇백 % 이상 오를 것이라 자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동문회를 준비한 동문회장으로서 세저리 주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 덧붙입니다. 제 '깜냥 부족'도 있었고, 동문회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 보니 행사 준비가 원활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향후 동문회를 체계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임원진을 구성하고 회칙도 만들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단 각 기수별 의견을 모아서 향후 구체적인 방안을 좀 논의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동문회뿐만 아니라 세저리 선후배끼리 자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고민해보고요. 봉샘 말씀대로 언론인(뿐만 아니라 사회생활하려면)에겐 네트워킹이 자산이니깐요.
*2008년 프레스센터에서 1기 신입생오리엔테이션을 했던 사진이 있어 올려봅니다. 10년 금방이네요 ^^